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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우리는 바다에 산다, 개도 멸치 형제 김영삼 김영호, 아버지 김종원, 삼대 째 가업을 잇는 멸치잡이 가족, 복덩이 막내 아들, 새내기 멸치어부 영삼씨, 우리는 바다에 산다 인간극장

아리아리동동 2018. 9. 16. 23:33


인간극장 우리는 바다에 산다, 개도 멸치 형제 김영삼 김영호, 아버지 김종원, 삼대 째 가업을 잇는 멸치잡이 가족, 복덩이 막내 아들, 새내기 멸치어부 영삼씨, 우리는 바다에 산다 인간극장 


인간극장 우리는 바다에 산다

KBS1 2014.12.01 ~ 2014.12.05

개도 멸치 형제 김영삼 김영호

아버지 김종원

삼대 째 가업을 잇는 멸치잡이 가족

복덩이 막내 아들

새내기 멸치어부 영삼씨

우리는 바다에 산다 인간극장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한 시간을 넘게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작은 섬, 개도(蓋島). 

주위에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에서 덮을 개(蓋)를 써 개도(蓋島)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 작은 섬에서 삼대 째 멸치잡이를 해오고 있는 가족이 있다.

바로 7개월 차 새내기 어부 김영삼(40) 씨와 가족들. 

사촌 동생인 7년 차 멸치잡이 어부 김영호(39) 씨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 

이렇게 다섯 명은 하나의 팀을 이뤄 멸치잡이를 하고 있다.

가족은 크기가 작아 쉽게 상하는 멸치를 신선도 높은 최상품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매일같이 1분 1초를 아끼며 잡고, 삶고, 말리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다로 향한다.

아직 바닷일이 서툰 영삼(40) 씨!

배 안에서만큼은 가장 막내 선원이다.

때로는 7년차가 된 사촌동생 영호(39) 씨와 아버지에게 큰 호통을 듣기도 하지만, 그 호통이 다 애정 어린 충고임을 알기에 오늘도 불평하나 없이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삼대 째 개도에 살며 가업인 멸치잡이를 하고 있는 가족.

화려한 도시생활을 즐기고 싶을 법도 하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평생 해온 일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멸치잡이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영삼씨와 영호씨.

그리고 도시에서 내려온 아들들을 위해 기꺼이 멸치잡이 어부의 길을 다시 걷고 있는 부모님.

오늘도 가족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최선을 다 하며, 개도 앞바다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영삼씨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 삼대 째 가업을 잇는 멸치잡이 가족

김영삼(40) 씨와 김영호(39) 씨는 개도에서 나고 자랐다.

사촌 형제인 두 사람은 어렸을 적엔 작고 사람도 없는 개도가 싫었다.

그래서 영삼(40)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호(39) 씨는 대학교 때부터 개도를 떠나 도시로 나가 살았다.

하지만 두 형제가 마주한 도시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업실패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한 미래, 두 형제는 불안했다.

그때 두 형제를 다시 품어준 것은 가족과 개도 앞 바다였다.

현재 영삼 씨와 영호 씨는 하루 세 번 이상 아버지가 물려준 작은 배를 타고 단둘이 바다로 나간다.

조금 더 일이 익숙한 영호 씨가 배를 운전하며 선봉에 서고 새내기 멸치잡이인 영삼 씨가 허드렛일을 하며 멸치잡이 일을 배우고 있다.

은빛멸치를 한가득 실은 배가 섬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아들들을 기다리던 어른들이 바빠지는 시간.

크기가 작아서 내장이 상하기 쉬운 멸치는 삶고, 말리는 시간이 상품의 질을 결정한다.

부보님들은 수 십 년을 멸치잡이 일을 하며 얻은 노하우로 커다란 솥단지 안에 바닷물과 천일염을 넣고 삶아 최상품의 멸치를 만들어 낸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부둣가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은 영삼 씨 가족이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 새내기 멸치어부 영삼(40) 씨의 꿈

사실 7개월 차 새내기 어부 인 영삼(40) 씨는 아홉 살 첫째 아들과 다섯 살 둘째 아들, 그리고 영삼씨가 귀어한 후 태어난 셋째 아들까지 세 아이를 둔 아빠다.

임신한 부인과 어린 두 아이를 도시에 두고 고향으로 내려올 결정을 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선택과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아내의 열렬한 내조 덕분에 홀로 개도로 내려올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도시에서의 성공을 꿈꾸지만. 영삼씨는 자신의 고향인 개도에서 부지런히 일 해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아들들에게도 바쁘고 치열한 도시의 일상보다는 자연 속에서 즐거움과 여유가 가득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게 해 주고 싶었다.

이번 셋째 아이 출산은 운이 좋게도 조업을 쉴 수 있는 조금기와 겹쳐 마음 편하게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안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효도를 하는 막내를 영삼 씨는 ‘복덩이’라고 부른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부담이 커졌을 법도 하지만, 영삼씨는 세 아들 덕분에 더욱 든든해 졌다고 말한다.

아내의 몸조리가 끝나는 2월이면, 가족 모두가 개도로 내려올 것이다.

함께 살 집과, 아이들이 다니게 될 학교를 알아보며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는 영삼씨.

가족과 함께하게 될 그 날을 생각하며 영삼 씨는 추운 바닷바람 앞에서도 당당히 웃고 있다.


# 개도 노총각 영호(39) 씨의 장가가기 프로젝트

김영호(39) 씨는 개도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건실한 총각이다.

대학까지 졸업한 동네 엘리트에, 어른들이 쩔쩔매는 컴퓨터, 배 수리는 물론이고, 멸치잡이 하고 남는 시간에 섬에서 모은 고철을 팔아 번 돈으로 노인정에 쌀과 음료수까지 사다 드리는 재주 많고 예의바른 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총각이라고 하기엔 조금 많은 나이인 39살 노총각.

섬사람답지 않게 깔끔한 외모의 영호 씨지만, 여수여객선 터미널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진 외진 섬으로 시집을 오려는 아가씨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영호 씨를 볼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없던 오지랖도 생긴다.

실제로 동네 주민들은 외지인을 볼 때마다 “우리 영호 소개시켜줄 참한 여자 어디 없냐.”며 영호 씨의 혼삿길을 두 손 걷어붙이고 찾아 나선다.

영호 씨는 결혼 때문에 섬을 떠나 살 생각은 없다.

그런 아들을 보며 가장 애가 끓는 사람은 아버지 김종원(74) 씨. 

이제 나이 앞에 ‘4’가 붙으면 결혼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만 된다.

영삼씨와 영삼씨 친구들의 노력 끝에 소개팅을 하게 된 영호씨.

서둘러 아침 조업을 마치고는 때탄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소개팅 장소인 여수로 향하는 영호 씨.

개도에서 아버지를 모시며 오순도순 함께 살 여자를 찾는 서른아홉 영호 씨의 꿈은 이루어질까?


#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영삼(40) 씨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다. 부모님이 두 분 씩 이기 때문이다.

영삼 씨는 초등학교 삼 학년이었던 때, 아들 없이 딸만 하나 있던 작은아버지 댁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영삼 씨의 선택이었다.

영삼 씨는 양자로 들어가던 그때부터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작은아버지, 어머니를 보며 두 분을 본인의 부모님으로 진심을 다 해 섬겨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호칭 만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다.

네 분 부모님 누구하나 섭섭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네 분이 함께 계실 때는 아예 호칭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작은어머니를 그냥 어머니로 부르기 시작했고, 결혼하면서는 본인이 제대로 호칭을 정하지 않으면 부인도, 아이들도 호칭이 어려울 것 같아 친아버지를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호칭 정리를 했다.

현재 영삼 씨는 새벽부터 밤까지 영호씨와 함께 해야 하는 멸치잡이 일 때문에 친아버지인 김종원 씨, 동생 영호 씨와 함께 큰댁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집 안 남자들이 다 홀아비여!”라며 신세 한탄을 하지만, 십여 년 만에 함께하는 아들들과의 생활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친부모님, 양부모님 모두가 본인의 진짜 부모님이라고 말하는 영삼 씨. 

남들보다 부모님이 많은 만큼 영삼 씨의 행복도 두 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