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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채널A 천 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
전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측천무후' 라는 제목의 중국 대하 장편 드라마를 아주 본 기억이 있는데요.
수 많은 고사성어가 탄생했을 정도로 복잡한 정국이었던 당시 중국 대륙.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고구려와 백제까지 차례로 멸망시키며, 당시 세계 최대 제국을 이룬 그녀.
신분에 상관없이 실력과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 하고, 민생 회복과 생산력 강화에 힘쓰며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 측천무후.
하지만! 그녀에게는 제가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비밀이 있다고 합니다.
서태후, 여태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 로 꼽히는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희대의 악녀, 측천무후의 비밀> 편에서는 중국을 호령한 여인, '측천무후 비석에 얽힌 비밀' 에 대해 공개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오늘은 당나라 왕실에서 일어난 왕자들의 연이은 죽음과 중국 최초 여황제가 될 수 있었던 측천무후의 비밀, '역대 중국 황제들의 비석과는 달리 비문이 없는 측천무후의 비석'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해주네요.


훗날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의 과거는 태종의 궁녀.
당태종 시대, 궁녀 출신이었던 측천무후 '무조'
말 타기를 즐겨한 당 태종, 하지만 그가 아끼는 말은 길들이기가 쉽지 않아 애마에서 자주 낙마했다고 하는데요.
아무도 길들이지 못했던 당태종의 자신이 길들이겠다고 나선 측천무후.


그녀는 당 태종에게 3가지 물건만으로 애마를 길들이겠다고 장담하는데.. 그 3가지 물건이란 쇠로 만든 채찍, 쇠망치, 비수.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으로 때릴 것이고, 그래도 길들이지 않으면 쇠망치로 머리를 칠 것이고, 만약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비수로 목을 그어버리겠다며 섬뜩한 말 다루는 법을 얘기하며 궁녀시절부터 남다른 기개를 보였다고 합니다.


궁녀 출신이었던 그녀가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궁에 들어온지 1여년 만에 황제의 승은을 입을 뻔 했던 그녀.
하지만 길흉화복을 점치는 '태사령' 이 태백성 (금성) 이 계속 나타나는 불길한 징조를 발견하고, 당 태종은 태사령에게 궁 안에 '무씨 성을 가진 여인' 이 있고 그 여자가 나라를 지배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듣게 된다고 합니다.
때마침 태종의 수발을 들기위해 침소에 든 측천무후. 하지만 '무조' 라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 태종은 그녀를 내쳐버리고 만다고 하는데요.


12년 후, 당나라 2대 황제였던 태종은 50세 나이로 병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태종의 죽음으로 위기를 맞은 무조.
황제가 죽으면 아이를 낳지 못한 궁녀들을 모두 궁을 나가 비구니가 되어야 하는 '황실 법도' 때문에 궁에서 쫓겨나 비구니 신세가 될 지경에 놓인 무조.
그러나!
2년 후, 쫓겨났던 무조는 당 3대 황제 고종의 후궁이 되어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는 하는데요.
후사가 없었던 황후가 다른 후궁들을 견제하기 위해 측천무후, 무조를 궁으로 불러들이며, 그녀는 고종의 후궁으로 황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측천무후의 딸이 갑자기 돌연사하는 사건이 생기고, 옹주를 죽인 살인자로 지목된 황후.
이에 분노한 고종은 황후를 미련없이 내치고, 후궁으로 있던 무소의, 무조는 황후를 끔찍하게 죽인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자신에게 후사가 없어 옹주를 예뻐했던 황후.
사실, 권력욕에 눈먼 무소의가 신분 상승을 위해 자기가 직접 자기 딸인 옹주를 죽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실제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황후가 옹주를 보고 간 후 측천무후가 몰래 옹주를 죽였고, 이후 현장을 위장했다 _ 자차통감 中
고종이 옹주를 보러 왔을 때 측천무후는 우는 시늉을 했고, 옹주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_ 자차통감 中


신분 상승을 위해 자식까지 죽인 측천무후.
황후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딸까지 희생시키며 숨겨둔 권력욕을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황후 황씨에게 곤장 백 대에 처했고, 곧바로 황후는 피범벅이 됐다 _ 구당서 中
그러고 나서 사지를 절단한 후 술독에 넣으라고 했다 _ 구당서 中


그러부터 몇 년 후, 황후에 오른 그녀.
병이 깊어진 고종은 태자 책봉식을 서둘러 아들에게 황위를 물러주려했다는데요.
태자 책봉식을 며칠 앞두고, 의문의 사고로 급사했던 첫째아들.
그리고 둘째 아들, 이현 까지 태자 책봉식을 며칠 앞두고 목을 매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태자가 될 아들들의 연이은 죽음.
그런데! 고종의 아들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은 것은 다름아닌 측천무후, 무황후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태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첫째 아들을 독살시킨 무황후. 형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 둘째 아들 이현은 두려움에 스스로 자살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연이은 아들들의 죽음으로 결국 태자 책봉식을 올리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만 고종.
그렇게 그녀는 67세의 나이에 중국 최초 여황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모든 이를 제거했던 그녀, 권력 강화를 위해 공포정치까지 시작했다는데요.
심지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젊은 남성들을 첩으로 삼았다는 그녀.
그녀의 수발을 들던 남자들이 밤마다 죽임을 당했으며, 남성 편력 역시 대단했던 측천무후


측천무후의 부름을 받은 남총은 3천명이었다 _ 구당서 中
나이, 용모, 건장 이 세가지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성욕을 충족시키는데 사용 됐다 _ 구당서 中


황제 즉위 15년 후, 노환으로 임종을 앞둔 측천무후.
그녀는 자신이 죽거든 '황제의 예' 가 아니라 '황후의 예' 에 따라 장례를 치뤄 달라고 부탁하며, 동시에 묘비에 아무 글씨도 남기지 말라고 유언 했다는데요.
황제로 15년간 당나라를 통치한 그녀는 결국,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역대 중국 황제들의 비석과는 달리 비문이 없는 측천무후의 비석
자식들을 죽이면서까지 황제에 오를만큼 권력욕이 강했던 그녀가 재위 15년, 82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며 묘비에 글자를 새기지 말라고 한건.. 혹시 자신이 죽였던 수 많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중국 3대 악녀 : 서태후, 측천무후, 여태후
중국 문명비평가 임어당 (린위탕) _ 측천무후는 일생동안 총 93명을 살해했는데, 그 중 자신의 직계 가족은 23명이고, 당 왕족은 34명, 대신은 36명이었다


싸인 145회 ▷▷ http://sulia.tistory.com/10033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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