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널리스틱

 
 
 


한류를 이끈 드라마 '대장금' 을 비롯해 '광해', '인목대비', '화정' 등 대한민국의 수 많은 사극, 역사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회자된 조선시대 왕, 선조, 광해군, 인조.
특히 결국 '왕' 이 되지 못하고 '군' 으로 생을 마감한 광해군 이야기는 수 많은 음모, 술수가 난무하는 조선 왕조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한데요.
채널A 천 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170회 < 인목왕후와 원수, 광해군의 끝나지 않은 싸움 > 편에서는 수 많은 역사 사극을 막장 사극 으로 만든 주인공, '선조' 와 '인목왕후',
세자 '광해' 와 '인목대비' 의 아들 '영창대군' 이야기, 조선사 최악의 모자, 인목왕후와 광해군 이야기를 전해 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중종 후궁 창빈 소생, 선조.
조선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 발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몽진' 을 선택한 선조.
당시 정비에게서 후사가 없었던 선조는 10명이 넘는 아들들 중 임진왜란 전쟁 상황을 책임질 사람으로 '공빈 김씨' 둘째 아들, '광해군' 군을 급하게 세자로 책봉한다.


광해 왕이 되기 위해 싸워야만 했던 남자
역사가 기억하는 핏빛 기록, 영창대군


1606년, 선조 즉위 41년, '인목왕후 김씨' 가 '정명공주' 남동생 '영창대군' 을 출산하자 적자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싶어진 선조와 인목왕후.
이미 인목왕후와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던 광해군은 더욱 인목왕후와의 사이가 나빠졌던 것.
선조 역시 인목왕후와 함께 광해군 폐위를 논하고 있던 상황.
('인빈 김씨' 총애 할 때에는 '신성군' 만 총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1598년, 선조 승하 로 이제 갓 3살된 영창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킬 수 없었던 인목대비
왕위에 올랐지만, 중국 명나라 책봉을 받지 못햇다는 이유로 광해군 으로 남은 광해.


인목대비는 자신의 아들 영창대군을 왕위에 올리고자 피비린내 나는 왕실전쟁 시작했고, 광해군은 자신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유배지 후송 중 불태워 죽이게 된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며 수 많은 공적을 쌓았던 광해군.
하지만 광해군은 즉위 후에도 끝나지 않은 싸움 때문인지 폭정을 시작했고, 1623년 4월, '인조반정' 으로 인해 폐위 당하고, 인조가 왕위에 앉게 된다.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


네이버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