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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91회 고종의 러브콜 미국에 사절단을 파견하다 2018년 10월 14일 방송


그들은 매일 밤 모여 노트한 것을 가지고 토론하며 (중략) 서로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고쳐주기도 하며 상의한다 - 뉴욕 타임즈, 1883년 10월 15일

1883년(고종 20년),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조선 외교사절단에 대한 기사이다.

조선 외교사절단은 왜 미국에 간 걸까? 

그리고 미국인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 보빙사! 미국 대통령을 만나다!

1883년 7월, 고종은 민영익과 홍영식을 비롯한 젊은 관료들을 미국의 외교사절단 보빙사로 임명했다. 

보빙사의 파견은 미국과 수교 후, 공사를 파견한 미국에 대한 답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보빙사는 조선을 떠난 지 두 달 만에 미국대통령 체스터 아서를 만나 큰절을 올린다. 

미국은 미지의 동양에서 온 사절단을 극진히 대접하며 일거수일투족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살폈다.


▶ 그들은 왜 서로에게서 등을 돌렸나? 

조선이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유럽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세운 나라다.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지 않으려는 대인배의 나라다 - 황쭌센, <조선책략>

미국은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 당시 회담장에서 청(靑)을 몰아내고 조선과 단독으로 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청의 심각한 내정간섭을 받던 조선에게 자주외교를 위한 매력적인 우방으로 보였을 것이다. 

반면 남북전쟁 후 급격한 산업기술의 발달로 자국의 공산품을 판매할 곳이 필요했던 미국에게 조선은 새로운 시장으로 인식되었다. 

보빙사가 샌프란시스코 상공회의소를 방문했을 때, 美상공인 300여 명이 장내를 가득 채운 것을 보면 당시 미국이 조선에 바라던 바를 짐작할 수 있다. 


▶ 조선, 미국을 다시 방문하다!

고종은 청의 갖은 방해와 위협을 이겨내고 박정양을 미국공사로 파견한다. 

당시 외교예산의 거의 절반을 투자해 주미 공사관도 구입한다. 

조선이 청의 속방이 아닌 자주국임을 세계에 알리려던 고종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고종의 바람과는 달리 조선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점점 멀어져간다. 

조선에서 수입 가능한 물품은 소가죽, 쌀, 사람 머리털, 전복 껍데기 등에 불과하다 - 푸트 공사의 정부 제출 보고서

1905년 을사늑약, 고종은 조미수호조약에 의거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사인을 한 후였다.


자주외교를 위해 애쓴 고종의 고심과 조선과 미국의 외교에 얽힌 이야기는 10월 14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고종의 러브콜! 미국에 사절단을 파견하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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