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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1 역사저널 그날


2015년 5월 10일 역사저널 그날은 조선 후기 최고의 문장가이자 실학자, 북학사상의 리더, 연암 박지원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고 합니다.
<청년 박지원, 과거시험에 백지를 던지다>라는 부제로 진행될 오늘 방송에서는 열하일기와 양반전, 허생전 등 수 많은 저서로 잘 알려진 연암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오늘의 부제인 '과거시험에 백지를 던지다'네요.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난 연암.
영조 46년, 1차 소과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 연암은 2차 시험에서 백지를 체출하고, 급기야 더 이상 과거시험에 응시조차 않았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연암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인지.
허생전과 양반전 등 그의 글에서 그가 하고자 했던 말들을 유추해 본다고 합니다.


연암의 대표작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열하일기죠?
오랑캐의 나라 청에 다녀와 집필한 청나라 기행문, 열하일기.
44세의 연암이 쓴 열하일기는 완본이 나오기도 전에 9종의 필사본이 돌 정도로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요.
정도는 1792년, 열하일기를 금서로 지정해 버린다고 합니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열하일기가 금서가 된 까닭은 무엇인지?
정조는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 중 하나로 당시 유행하던 새로운 문체를 거론하며 열하일기를 지목했다고 하는데요.
오늘 방송을 통해 열하일기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와 정조가 거론한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고 합니다.
또 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실상을 전하며 '청나라의 진수'라 주장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요. 청나라의 진수라 가리킨 것은 무엇일지 오늘 방송에서 공개한다고 하네요.


조선 시대 선비들의 꿈이자 입신양명과 출세가 보장된 과거를 포기하고, 친구들의 천거로 5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종9품 말단 관직생활을 시작했다는 연암.
그가 늦은 나이에 관료가 된 이유는 청나라에서 보고 온 것들을 실험해보자함이었다고 하는데요.
이용후생(利用厚生)사상을 직접 실천하고자 안의현감, 면천군수 등을 지내면서 수레, 벽돌굽기, 물레방아 등 백성들의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청나라식으로 직접 만들어냈다는 연암.


이런 연암의 모습에 정조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정조시대 일어난 문체반정과 문체반정으로 시작된 정조와 박지원의 인연.
오늘 방송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저자 이원복 교수가 출연해 18세기 조선에 불어닥친 개혁의 바람과 당시 세계사 등을 재미있게 이야기 해 준다고 합니다.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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