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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1 <역사저널 그날


 


잠시후 10시 30분부터는 역사저널 그날 90회 방송이 시작되는데요. 

'위기의 고구려, 그가 왕이 되었다 - 광개토대왕'라는 제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고구려를 구해내고 고구려 최고의 정복군주가 된 광개토대왕에 대해 알아 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391년 18상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이후 어떻게 한반도의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으신 분이시라면 오늘 방송에서 그간의 궁금증을 해결하시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하네요. ^^ 


그리고 아래에 오늘 방송에서 다룰 내용들 미리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길 .. ^^


- 대제국의 기틀을 세운 광개토대왕

- 이름은 담덕(談德) 또는 안(安)으로 고국양왕의 아들

- 만주벌판 요동 쏭화강 시베리아 그리고 한강까지 

- 광개토대왕 즉위 당시 고구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였다고.

- 광개토대왕 즉위 50년 전, 북방의 강국 연나라가 침략해 고구려 백성 5만을 포로로 삼았으며 광개토대왕의 증조부, 미천왕의 시신을 도굴. 

- 백제와의 전투에서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이 백제의 화살에 맞아 전사

- 계속된 기근으로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

- 위기의 고구려를 고구려답게 만든 정복군

- 391년, 고구려의 19대 왕 광개토대왕 즉위

- 왕위에 오른 직후 광개토대왕은 4만의 군사를 이끌고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백제의 북쪽 침공 (10성 함략)

- 군사요지 관미성 함락에 이어 수도 한성까지 포위한 고구려군, 백제 아신왕 항복

- 광개토대왕의 전략과 전술

- 재위 기간 22년 동안 왕성한 정복활동을 펼친 광개토대왕.

- 잦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광개토대왕

- 단순한 영토 확보가 아닌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거란의 시라무렌 강과 요하강의 동쪽, 요동을 정벌

- 정복활동에 가려진 경영군주의 면모. 고구려의 CEO 광개토대왕 분석

- 고구려를 대제국으로 만든 광개토대왕을 기리는 높이 약 6.39m, 너비 2m의 거대한 능비를 세운 장수왕

- 비석에 새겨진 광개토대왕의 이름, 시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 광개토왕릉비에는 연호인 영락(永樂)을 왕호로 사용한 영락태왕(永樂太王),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호태왕(好太王)으로 알려져 있다고

- 광개토왕릉비에는 광개토왕의 활발한 정복 사업이 기록되어 있으며, 평생에 걸쳐 64개 성과 1,400촌을 공취했다고 전하고 있다고

- 국가적 위기를 타파하고, 고구려다운 고구려를 재건해낸 왕 광개토대왕

- 정복군주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애민군주 광개토대왕 재조명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진행 : 최원정, 신병주, 류근, 이해영, 최태성, 이윤석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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