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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1 <역사저널 그날>  


잠시후 10시 30분부터는 역사저널 그날 95회 방송이 시작되는데요. 

'살수대첩 - 수나라 100만 대군 고구려를 침공하다'라는 제목으로 살수대첩의 역사적 의미와 살수대첩 때문에 발생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대해 알아 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살수대첩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도 대거 알려준다고 하니깐요.

궁금하신 분이시라면 잠시후 방송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하네요. ^^  


그리고 아래에 오늘 방송에서 다룰 내용들 미리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길 .. ^^


- 중국 북경 근처 탁군에 거대한 병력, 113만 3천 8백명 운집

- 수양제 (양광) 의 지휘아래 고구려 침공

- 출병에만 40일이 걸린 수나라 100만 대군

- 동아시아 최강대국 수나라와 고구려의 대격전

- 영양왕 재위 시절

-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요동성주

- 589년, 수나라는 중국을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강자로 급부상

- 형식적 조공, 책봉관계에서 나아가 수 중심의 천하관을 세우려는 수나라의 요구에 고구려는 정면으로 반발

- 최전성기를 거치며 독자적 천하관을 완성한 고구려에게는 부당한 요구,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갈등 최고조

- 607년, 수양제는 우연히 돌궐과 접촉하는 고구려 사신 발견

- 복속 후에도 경계심을 놓지 못하고 있던 돌궐과 고구려 사이에 모종의 밀약을 걱정한 수양제

- 결국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시작

-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백만 대군의 침공

- 예상치 못한 전쟁의 변수, 요동성 전투

- 2월, 수나라의 군대는 고구려의 1차 방어선, 요하에 당도

- 부교설치에 난항을 겪는 수군을 집중 공격해 도하를 저지하는 고구려군,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요동성으로 퇴각

- 요동성을 두고 대치하는 수나라와 고구려군

- 수도 평양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요동성은 고구려에게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될 주요 거점

- 고구려군은 수에 맞서 ‘기만전술’로 대항, 요동성 사수

- 석 달이 넘게 계속되는 교전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요동성

- 백만 대군을 상대로 요동성을 사수할 수 있었던 이유

- 별동부대 30만 5천 명의 출정병, 단 2,700명만이 살아남다 .. 살수대첩

- 6월, 요동성 함락이 여의치 않자, 수양제는 평양성으로 30만 5천 명의 별동부대를 파견

- 별도의 보급부대가 따라가지 못해, 군사들이 70kg가 넘는 식량을 지고가야 하는 상황

- 급기야 식량을 몰래 버리는 병사가 속출

- 을지문덕 장군의 항복의사를 접한 수군. 결국 철군을 결행

- 그런데, 철군하는 수군의 뒤를 밟는 군사들의 움직임. 바로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하는 고구려군!

- 고구려군은 철군하는 수군의 후미를 공격해, 살수에서 수군을 궤멸

- 살수대첩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 흔히 살수 대첩 하면 귀주 대첩과 함께 수공(水攻)을 떠올린다. 그러나 《삼국사기》, 《수서》, 《자치통감》, 《동사강목》, 《해동역사》 등 한국과 중국의 사서에서는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오직 근대 기록에만 등장하는데 이는 민간의 전설이었던 칠불전설(七佛傳說)이 변형되어 수록된 것이다. 실제 수공을 활용한 전투는 흥화진 전투 뿐이라고.

- 을지문덕의 시 ..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보낸 시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을 다했노라

  戰勝功旣高 전승공기고 -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 만족함을 알고 그만 두기를 바라노라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진행 : 최원정, 신병주, 류근, 이해영, 최태성, 이윤석, 이광용, <만물각> 박금수 박사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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