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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 <역사저널 그날>


일요일 10시 30분이면 저희집은 항상 TV앞으로 모여드는데요, 유익한 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선조, 세종, 정조 등 조선의 왕으로부터, 이순신, 정약용, 박지원 등 장군과 학자들까지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다루며 저희집 지적 수준을 높여 주었는데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의외로 역사에 대해 얕은 지식을 가졌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예전에 국사공부는 꽤나 열심히 했는데 말입니다. ^^ㅎ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역사저널 그날' 주제는 19세기 조선후기 농민 항쟁의 초석이 된 '홍경래의 난, 저항의 시대를 열다.'입니다. 

'홍경래의 난'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811년(순조 11년) 음력 12월 18일부터 1812년(순조 12년) 음력 4월 19일까지 4개월 동안 홍경래·우군칙 등을 중심으로 평안도 청천강 주변에거 봉기한 농민 반란'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요,

농민 뿐 아니라 사회적 모순에 불만을 품은 지식인과 양반, 상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봉기한,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치밀하고 조직적인 국민저항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홍경래의 난'이 발생했을 당시 조선에서의 지역 차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영조때 실학자인 이중환이 쓴 지리서 <택리지>에 보면 

'서울 사대부는 평안도 사람과 혼인하거나 벗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평안도 출신은 관직에도 나아가지 못했거니와 과거에 합격해도 요직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하네요.

이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평안도 사람들이 봉기의 주역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반란이 토벌 될 때 체포된 봉기군만 2,983명이었다고 하니 과히 봉기군의 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체포된 봉기군 중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1917명이 참수되며 반란의 끝은 암울하기만 하였는데요, 그래도 저항정신은 지속되어 이후 임술농민봉기(1862년), 동학농민전쟁(1894년)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막을 연 저항의 시대의 초석이 된 '홍경래의 난', 그날이 궁금하신 분이시라면 잠시후 10시 30분 '역사저널 그날' 방송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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