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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1 <역사저널 그날


잠시후 10시 30분부터는 역사저널 그날 106회 방송이 시작되는데요. 

'신년기획 고대사 인물열전 '선택' 5부작 제 2편 김헌창, 반란 혹은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신라 하대에 장안이라는 나라를 세워 신라에 맞섰던 김헌창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 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김헌창에 대해 확실히 짚어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하니깐요. 

궁금하신 분이시라면 잠시후 방송 절대 놓치지 마셨으면 하네요. 

재미있게 보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아래에 오늘 방송에서 다룰 내용들 미리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길 .. ^^


- 김헌창 : 태종 무열왕의 차남 김인문(혹은 3남 문왕)의 4대 손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아들

- 통일 이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태평성대를 누리던 신라

- 100여 년이 지난 822년, 무려 절반 가까운 세력이 신라에 반기를 든다.

- 반란의 주인공은 신라판 금수저, 진골 귀족 김헌창

- '장안’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신라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다.

- 거병한 헌창은 스스로 왕을 자처하며 새로운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으로 정하고 자신이 거병한 해를 경운 원년으로 선포했다. 

- 헌창의 세력 범위는 무진주·완산주(完山州)·청주·사벌주(沙伐州)의 4개 주와 국원경(國原京)·서원경(西原京)·금관경(金官京)의 3개 소경(小京) 등 옛 백제 지역에 걸쳐 있었다.

-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

- 삼국사기 : 822년 3월, 웅천주 도독 헌창이 아버지 주원이 왕이 되지 못함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킨다

- 785년, 당시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

-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왕위에 오른다. 신라 38대 왕인 원성왕, 신라 하대의 시작

- 갑작스러운 큰 비로 김주원이 신라 왕실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

- 폭우는 하늘의 뜻이라는 신라 귀족들의 의견에 왕좌를 빼앗긴 김주원

- 삼국유사에는 김경신이 한 가지 꿈으로 인해 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하는데... 

- 그로부터 37년 후. 순순히 왕의 자리를 내어준 아버지의 선택과는 달리,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

- 신라 우물 속에서 발견된 아이의 해골!

- 경주의 한 우물에서 어린 아이의 해골 발견

- 분석 결과 아이는 약 9세기 신라의 국가 제사에 ‘인신공양’된 것

- 고달픈 민생을 달래기 위해 어린 생명이 희생

- 신라 하대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

- 김헌창이 난을 일으킨 시기 왕이었던 제41대 헌덕왕은 ‘신라판 수양대군’으로 자신의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인물.

- 정권이 바뀌며 좌천된 김헌창은 지방관을 두루 거치며 이렇듯 모순으로 가득한 신라의 현실을 직접 목격 

- 김헌창의 마지막 선택, 자살

- 김헌창이 일으킨 난은 순식간에 절반 가까운 지방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

- 나라 이름을 장안(長安)이라 짓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신라를 전면 부정한 김헌창.

- 정부군의 일사불란한 진압과 밀고자로 인해 김헌창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김헌창은 웅진성으로 가까스로 몸을 피한다. 

- 이후 열흘간 계속된 정부군의 맹공격에 패배를 직감한 김헌창. 

- 신라 사회를 뒤흔들었던 혁명의 불씨가 한 달 만에 허무하게 꺼져버린 것

- 많은 세력의 호응을 얻었지만 백성들의 깊은 단결력을 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김헌창의 난. 

- 이 사건은 지방 호족을 깨우는 계기가 되며, 이후 후삼국 시대의 서막을 여는 중요한 열쇠

- 신라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김헌창의 불꽃같은 삶.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진행 : 최원정, 신병주, 류근, 이해영, 최태성, 이윤석, 이광용, <만물각> 박금수 박사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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