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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1 <역사저널 그날>  


잠시후 22시 30분부터는 역사저널 그날 109회 방송이 시작되는데요. 

'신년기획 고대사 인물열전 '선택' 5부작 제 5편 신라의 최후, 경순왕과 마의태자'이라는 제목으로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과 그의 아들 마의태자에 대해 알아 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경순왕과 마의태자에 대해 확실히 짚어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하니깐요. 

궁금하신 분이시라면 잠시후 방송 절대 놓치지 마셨으면 하네요. 

재미있게 보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아래에 오늘 방송에서 다룰 내용들 미리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길 .. ^^ 


-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과 그의 아들 마의태자

- 경순왕 : (敬順王, 901? ~ 978년 5월 13일 (음력 4월 4일), 재위: 927년 ~ 935년)은 신라의 제56대 군주이자 마지막 군주. 성은 김(金)씨, 이름은 부(傅)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문성왕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飡) 효종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 계아태후. 그는 경명왕과 경애왕의 이종 6촌 동생. 본래는 신라의 왕족이었으나 이종 6촌 형 경애왕이 갑작스럽게 암살되면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재위 9년만에 고려에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줄 것을 결정하였고, 태조 왕건에게는 자신의 사촌 누이 신성왕후와의 결혼을 주선하였다. 태조 왕건으로부터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고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졌으며, 낙랑공주 왕씨와 부인 왕씨 등 태조 왕건의 딸 2명을 배필로 맞이하였다. 한편 금성의 사심관에 임명되어 고려시대 사심관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927년 국상(國相) 김웅렴(金雄廉)이 잠시 대리청정을 하였으며 같은 해 927년부터 935년 퇴위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그의 능은 신라의 왕릉 중에 유일하게 경주가 아닌 경기도에 있다.

- 마의태자(麻衣太子, 912년~?) : 신라 마지막(제56대) 왕 경순왕의 왕자, 성은 김(金)씨, 휘는 일(鎰 또는 溢)이라 전하며, 일명 금부대왕 또는 김부대왕(金傅大王)으로도 불린다. 신라왕후의 적자임과 동시에 화랑 효종랑의 손자이다. 5남인 김분과 함께 고려에 귀순하려는 아버지 경순왕을 만류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나라를 떠나 금부리에서 충신 지사 일민들과 함께 조국 광복의 숭념을 발의하였다. 후에 개골산(皆骨山)에서 대절을 지켰으므로 그 증손에 이르러서야 대의를 실행한다는 명분으로 나라에 출사하게 되었다.

- 신라의 운명을 둘러싼 두 사람의 엇갈린 선택

- 망국亡國을 맞는 지도층의 올바른 자세는?

- 후백제 견훤에 의해 왕이 된 경순왕

- 927년 신라.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습격

-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던 신라 제55대 경애왕

- 갑작스러운 침탈에 대비하지 못하고, 결국 견훤의 핍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애왕 

- 견훤은 직접 왕위에 오르지 않고 경순왕을 왕으로 내세운다

- 당시 3대째 박씨(氏)계 인물이 왕위를 이었던 신라

- 때문에 김씨(氏)인 경순왕은 뜻밖에 왕위에 오르게 됐는데... 

- 견훤에 의해 선택된 경순왕

- 930년, 고창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 한반도의 최강자로 부상

- 경순왕의 청으로 3개월간 신라에 머무른 고려의 태조 왕건

- 그는 경순왕과 신라 관료들에게 각종 물품을 선물하며 민심을 사로잡는다. 

- 백성들 왕건을 칭송 : 견훤이 왔을 때는 승냥이와 호랑이를 만난 것 같았는데, 왕공(王公)이 오니 부모를 만난 것 같다

- 고려와 화친을 유지한 신라

- 이미 신라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고려에 의존하며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신라의 멸망, 부자의 엇갈린 선택

- 935년, 경순왕은 천 년 사직을 고려에 바치기로 결심

- 마의 태자는 항전을 주장하며 귀부를 강력히 반대 : 나라의 존속과 멸망은 반드시 하늘의 운명에 달려 있으니,어찌 1천 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남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 삼국사기 中

- 하지만 당시 신라는 건사할 백성도, 영토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던 상황

- 결국 경순왕과 귀족들은 귀부를 결정하고 개성으로 떠난다

- 이후 통곡하며 금강산에 들어가 ‘마의’를 입고 나물을 먹으며 생을 마친 태자

- 경순왕은 태조 왕건의 딸과 혼인하고,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며 고려인으로서 영화를 누린다.  

- 신라의 멸망 앞에 정반대의 선택을 내린 부자(父子)

- 신라 멸망과 함께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진 ‘마의태자’

- 강원도 인제 부근에서는 마의태자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

- 마의태자가 의병을 모아 신라 재건을 도모했다는 맹개골

-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량미를 모아두었다고 해 이름 붙여진 군량리

- 국권 회복에 대한 의지가 담긴 다무리

- 기록엔 없지만 천 년 신라의 명예를 지킨 인물로 전설이 된 마의태자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진행 : 최원정, 신병주, 류근, 이해영, 최태성, 이윤석, 이광용, <만물각> 박금수 박사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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